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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인간관계에서 실질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부분은 사실 그 인간관계가 주었던 실질적인 일이나 만남 혹은 다툼 등이 아니라 그것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을 미워하던 마음 혹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실질적인 고통의 순간은 짧다.
아니 없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로 인해 해야 할 일도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고 양도 많지는 않다.
그것보다는 그렇게 고생해야 하는 시간 외에도 며칠을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다.
불합리함. 그 사람의 이기심, 오만함 등을 떠올리면서 내내 괴로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을 떨쳐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외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사람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사람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나에게 고통을 준다.
내가 보다 질이 나쁜 인간이었다면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계획을 세우거나 그것을 실행하면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면 보다 강한 사람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렇지 못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사람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도와주기로 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내서 도와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마음만이라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질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내일 그를 만나볼까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은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세상에 그렇게 나쁜 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라면 나도 그다지 괴로울 이유가 없다.
왜냐 하면 사실 그로 인해 그렇게 나쁜 일도 없었고, 그렇게 힘든 일도 없었으며, 그렇게 괴로운 일도 없었다.
이게 세상 사는 도리겠지.
내일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음은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어쩌면 결과에 관계 없이 내가 계속 지금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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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네오소나
|

솔직히 사카모도 료마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용마가 간다'라는 만화를 읽으면서였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만화라니... 당시 나는 검도를 갓 배우기 시작한 시기였고, 만화에서 료마는 일본 최고의 검객으로 묘사되었다. 최고의 검객이라... 멋지지 않나? 만화에서 료마는 중국에 가서 중국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 사카모도 료마라는 인물에 매료된 것은, 그가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일본을 구해내었기 때문이기 보다는 북진일도류를 대표하는 검객으로서 한 남자가 보일 수 있는 극한의 기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만화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 100% fiction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왜 하필 이순신 장군과 같은 분이 아니라 일본인 사카모도 료마인가?
나는 절대 친일파는 아니다(^^ 이런 걸 이런 식으로 써야 하나?). 따지고 보면 친일파라는 용어도 재미있는 용어다. 예컨대 친한파 같은 단어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친일파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용어이다. 만일 친한파와 같은 맥락에서 친일파라는 말을 해석한다면 나는 친일파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고, 언젠가는 일본과 잘 지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즈음에 나라를 일본에 팔아 먹은 바로 그 '친일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분노하고 증오한다. 그리고 일본인 중에서 극우 정치인들 혹은 극우 똘마니들도 마찬가지로 극도로 싫다.
그러나 개인주의 적이지만 겉으로나마 친절하고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고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남에게 절대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그 일본인들에게는 호감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호감의 한 가운데에 사카모도 료마가 있다.
어떤 면에서 사카모도 료마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료마 덕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서양의 식민지냐 자주 국가이냐의 갈림길에서 자주 국가의 길을 가게 된다. 그로 인해 부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게 된다. 더군다나 안중근 의사께서 죽인 이토오 히로부미는 료마 덕에 발굴되어 큰 인재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료마가 자신의 일이 잘 안될 경우, 측근들과 함께 망명할 나라로 조선을 염두에 뒀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료마는 조선과의 협력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어 보면, 확실히 료마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사내이다. 물론 '료마가 간다'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느 역사서도 소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 책 '료마가 간다'가 묘사하는 료마의 모습을 그저 허구의 인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정말 그랬을 개연성은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인물 '사카모도 료마'에 매료되었다. 그 점에서 시바 료타로와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시바 료타로가 이 인물에 대해 반드시 책을 써야겠다고 작정했던 것처럼, 나도 이 인물에 대해 내가 느꼈던 감정, 이 인물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글로 써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이 첫 발걸음이다. 어떻게 보면 사카모도 료마는 현재의 내 모습 - 그것이 성공적이든 실패작이든, 아니면 내가 원했던 것이든 아니든 간에 - 을 만들었다. 교육자는 처음부터 내가 꿈꾸던 직업은 아니었다. '료마처럼 될 수 없다면 료마를 길러낸 스승이라도 되자'. 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의 내 모습은 그것마저도 할 수 없는 위치이지만, 누가 알겠나. 혹시 그렇게 될 지.
Posted by 네오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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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글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 -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인식 - 은 마치 잘못된 지도를 펼쳐놓은 것과 같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부분을 다시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어 생각나는대로 적었다.

우리나라에게 잘못된 지도는 왜곡되고 있는 역사와 언론이다.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주역들, 그리고 그들을 찬양했던 자들이 나라의 주도층이 된 지금, 그들에 의해 제시된 지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역사는 완전히 다시 쓰여졌다. 때문에 부유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을 권장하는 것이 역사적 위선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만큼 부자 나라들은 상당 정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자국 역사를 실제 모습 그대로가 아닌 현재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국의 관점에 더 어울리게끔 점진적으로 고쳐 쓸 수밖에 없다"

이 글이 우리의 역사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진실된 과거-역사는 이제 잊혀지고 왜곡되고 포장되어버리는 것일까?
Posted by 네오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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