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원 영문글:http://www.bspcn.com/2010/08/01/the-best-high-school-valedictorian-speech/ 번역: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rysialove&logNo=150091614704

 

 

- 6월 25일, 미국의 Coxsackie-Athens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수석 졸업생인 Erica Goldson양의 연설 전문

 

 

예전에 선(禪)을 공부하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승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도를 깨우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승은 곰곰이 생각한 후, “10년 정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빨리 깨우침을 얻기 위해 진짜 많이 노력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자 스승은 “그렇다면 20년 정도 걸리겠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제가 진짜, 진짜, 무진장 노력하면 어떨까요?” 스승은 이 질문에 대해 “30년”이라고 묵묵히 대답했습니다. 실망한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오래 걸린다니요? 왜 그런 말씀을…”.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놓고 정진하면, 하나의 길만 바라보며 걸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즉, 목표에 연연할 수록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고찰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

 

 

저도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면서 비슷한 딜레마에 부딪혔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시험이니, 석차니, 모두들 어떤 목표를 세워 놓고 학습에 임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단지 목표 달성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할 뿐이니까요.

 

 

아마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고 졸업생 대표까지 맡게 되었으면 뭔가 배웠을 것 아니냐?”. 네, 뭔가 배우긴 했겠죠. 하지만 잠재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 지명,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일자 같은 것들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또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 속에 입력된 지식을 지우고… 학교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자”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제 그 목표의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졸업하거든요. 게다가 수석이라는 영예까지 얻었으니, 즐거워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동기생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결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들을 잘 해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학교의 세뇌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행했다는 공로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걸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가을이 오면 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직장에 들어가서도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증서(대학 졸업장)를 따내기 위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 사고하는 인간, 그리고 모험을 하고 싶은 인간입니다. 일꾼이라는 것은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시스템이 준비해 놓은 체제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이 노예들 중에서도 최고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수업시간에 경청하지 않고 노트에 그림 연습을 했던 동기생들은 나중에 위대한 화가가 될 지도 모르지만,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를 한 저는 어느 누구보다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방과 후 자신이 읽고 싶은 책들을 읽느라 바빴던 동기생들은 다음 날 숙제를 해오지 못해 혼났지만, 저는 한 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작곡과 작사에 열중하는 동안 저는 학과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따기 위한 특별활동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왜 수석이 되기 위해 그리도 발버둥을 쳤을까? 네, 물론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긴 합니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제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헤매게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설계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관심분야도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분야에서 남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매달렸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두렵습니다.

 

 

교육학자인 John Taylor Gatto씨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수업시간, 교과목, 시험 같은 것들을 보다 덜 엄격하게 관리하고, 학생들에게 뛰어난 스승들을 붙여 주고, 학생들에게 자율을 허용하고 때로는 모험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면 젊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호기심, 모험심, 활력을 얼마든지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시스템은 우리 학생들이 모두 똑같아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으며, 학교가 정한 룰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각을 가지는 학생들은 실패한 자들로 평가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H.L. Mencken은 1924년 4월, The American Mercury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교육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지적 잠재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가급적 많은 학생들을 안전한 수준으로 획일화시키고, 모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불만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개성을 없애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미국 공교육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들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들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비판적이지 않은 사고도 존재한다는 겁니까? 사고라는 것은 정보를 처리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걸 진정한 사고라 할 수 있습니까? 단지 남의 의견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저도 이런 식으로 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10학년 때 Donna Bryan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사고의 폭을 넓히고, 남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 질문해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Bryan 선생님을 알게 되지 못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예전에 비해 많이 깨어났지만, 아직도 제 정신은 약하게 느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곳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얼마나 정신 나간 곳인지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개성을 억누르는 세상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합니다. 기업과 물질주의가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난센스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변화를 요구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나중에 자동화될 수도 있는 일, 불필요한 일, 열정도 없고 의미도 없는 노역과도 같은 일을 하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교육 시스템은 우리에게 열정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돈이 동기부여가 되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열정이 동기부여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를 격려하기 보다는 훈련시키려고만 하는 시스템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열정은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주입 받은 내용들을 자동적으로 내뱉도록 훈련된 로봇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별합니다. 우리 모두 이보다는 더 나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암기보다는 혁신을, 쓸모 없는 일보다는 창의성을, 정체보다는 숙고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단지 졸업장을 받고, 취직을 하고, 업계에서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반복적인 소비를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가장 슬픈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처럼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업과 정부로부터 권위에 순종하는 사회의 일꾼들이 되기 위한 세뇌교육을 충실하게 받고 있으며, 이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제가 살아온 지난 18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보다 나은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도망가서 다시 배울 수도 없습니다. 제 유년 시절은 이미 막을 고했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저랑 똑같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손에 놀아나 잠재력을 억압당하는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철학자이고, 꿈꾸는 자이고, 탐험가고, 예술가고, 작가이고, 엔지니어입니다. 우리 모두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꿈 실현을 위해 돕기보다는 억압하는 교육 시스템만 없다면 말이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가 땅속에 깊게 박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교육 시스템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후배들도 절망하지 마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자신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세요. 자신의 지적 능력이 학교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쓰이기보다는,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을 요구하세요.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걸 공부해야 해”라는 변명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얘기하세요. 교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을 올리기 보다는 배움을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하세요.

 

 

제가 지금까지 비판한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은 제 얘기에 기분 나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욕하려는 게 아니라 동기를 부여하려고 하는 말이니까요. 여러분들은 이 무능한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학생들이 교실에서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교육자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잖아요. 여러분들도 위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라고 지시하는 것과,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벌을 받게 되는 현실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계시잖아요. 젊은이들이 장차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제 곧 시스템을 떠나시는 동기생들에게는, 지난 몇 년 간 교실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잊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여러분들의 후배들을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는 세상의 미래이며, 잘못된 전통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부패의 벽을 허물고 미국 내에 새로운 지식의 정원을 가꿔나갈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교양과 지혜로 무장한 우리는 이 힘을 좋은 용도로만 쓸 것입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악습을 타파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하고, 진실을 요구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섰습니다. 저 혼자서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 제 주변 환경, 그리고 지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동기생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위치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덕택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경쟁했지만, 여러분은 제 피와 살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졸업생 대표입니다.

 

 

이제 이 학교, 학교를 운영하는 모든 분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작별이 아니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입니다. 우리가 함께, 진정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기 위해서 다시 만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일단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인증하는 종이 쪼가리부터 받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네오소나
|

2009.9.4.금요일

파토

이제 바보도 가고 인동초도 졌다. 시절은 점점 암흑으로 치닫고, 민주주의의 영광은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듯 하다.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장례 후 이명박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등, 이 모든 상황은 그저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또 익숙해지고 있다. 실로 반역의 세월이요, 통곡의 세월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갈 곳을 잃은 우리들에게 지금 필요한 존재는 무엇일까? 많은 다양한 답이 가능할 것이고 그 모두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어른이 필요하다.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주먹이나 돈의 힘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서 나오는 권위를 통해 우리를 꾸짖을 수 있는 어른이 택도 없이 부족하다.

바보와 인동초는 물론이고, 우리는 얼마 전 그런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김수환 추기경도 잃었다. 비록 말년의 언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으나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가 고비마다 미친 영향과 발휘한 리더쉽, 이끌어낸 결과들의 긍정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유신 시절부터 87년의 직선제를 이끌어 낸 반독재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학생에서 시작해서 국민을 통해 완결되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수많은 종교계, 학계, 예술계 어른들의 힘찬 목소리가 그 뒤에 있었다. 필자의 세대라면 익숙할 문익환 목사와 백기완 선생 등은 물론 과거 함석헌 선생 같은 분 등 이름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지금은 망가진 김동길이나 김지하씨도 그때는 그런 입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분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나이가 너무 들어서 돌아가신 경우도 많고 위 괄호 안의 모씨들처럼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며 어른이기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과거에 비해 계산이 빨라지고 몸을 사리는 전반적인 사회 풍조의 만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교만해져서 이미 존재하는 어른을 알아보지 못하고 섬기지 않는 태도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각설하고, 사회의 양심적 구심점들이 다 붕괴되어 가는 이 시대, 그리하여 황색 언론의 대명사인 본지가 과분하게도 그런 입지에 놓이게 된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사회의 진정한 어른들을 길러 뫼시고 찾아 섬기는 일은 현재의 총체적 난국의 해소는 물론 본지가 그 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이 가당찮은 짐을 벗고 다시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최근 거침없는 언행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인물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바로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이다.

봉은사...

이곳이 어떤 곳이더냐?

강남 금싸라기 땅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찰. 면적 2만 1천 90평. 공시지가 1천7백2십억 원. 그러나 인근 지역 땅값 평당 1억 원이니 개발시 추정 땅값 대략 2조원. 신도 수 25만 명에 연 수입 120억...

한때 우리나라 부자 사찰의 대명사이자, 세속적인 불교, 심지어 부패한 불교의 상징같이도 일컬어지곤 했던 이곳. 그래서인지 과거 그 관할권(?)을 둘러싸고 각목부대와 승려들 간의 폭력이 난무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난맥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던 바로 그 곳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봉은사는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아니 정 반대로, 세상이 다 거꾸로 돌아가는 와중에 어쩌면 봉은사만이 부처의 뜻을 전하는 순수하고 정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명진 스님이 있다는 사실이다.

명진 스님은 2006년 11월 21일 봉은사의 23대 주지로 취임했다. 그리고는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5일부터, 불과 며칠 전에 끝낸 장장 천일간의 기도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봉은사 주지 생활의 대부분을, 봉은사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천일기도만으로 보낸 거다.

머 9년 면벽했다는 스님도 있는데 봉은사 같이 큰 절에서 문 밖에 안 나오는 게 대수며, 그런 와중에 천일기도가 머 그리 어려운 거냐. 시간 맞춰서 중얼중얼 예불이나 하고 참선하는 듯 졸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다.

기도 기간 동안 명진 스님은 새벽 4시 30분, 오전 10시, 오후 6시 30분 3회에 나눠 매일 총 1천 배의 절을 올렸다. 다시 말하자면 거의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3일에 3천배 씩을 연속해서 한 거다. 3천배는커녕 3백배라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창 때의 청년도 감당하기 벅차고 한번 하고 나면 자리에 눕기 일수다. 하물며 60 연세에 매일 이런 정진을 한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주지로서의 각종 업무와 결정들은 물론, 무엇보다도 봉은사의 이미지와 성격을 탈바꿈시키는 개혁의 손길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그 동안 신도의 수도 30% 증가했고 매주 일요일 하는 일요법회도 기존의 50여명에서 30배인 1500명으로 급증했다. 주요 회의에 재가 불자들을 참여시키는 파격을 단행하고,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연 80억의 재정 규모가 오히려 120억으로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 보수의 중심지라고 할 강남에서, 한때 순잡음 교회와 함께 종교계의 부자 & 보수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봉은사가 단 3년 동안 신도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어낸 성과다.

그래서 지금의 봉은사는 불전함마저 신도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원래 주지가 자기 주머니처럼 사용하던 것이 불전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명진의 행보가 얼마나 파격적이고도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애초 명진 스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그는 원래 전국의 산하와 거리를 누비던 불교계의 야인이자 실천운동가이기 때문이다.

대입 준비를 하던 18세때 우연히 만난 화두를 붙잡고, 1969년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가 법명을 받았지만 성철이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자 도망갔던 일화, 그리고 5년이 지나서 법주사를 찾아가, 굳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탄성 스님을 골라 상좌가 되겠다고 우겨 출가하고, 불교계 내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인맥이 중요하던 시대에 철원의 초가집에 은거하던 여백우 처사를 찾아 배움을 받던 일 등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구도의 괴짜 스님 그 자체다.

85년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10.27 법난 규탄대회로 감옥에 가기도 했고,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때는 수많은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복을 벗어 불전에 올린 뒤 종단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옷을 벗겠다고 해 많은 스님들을 울리고 종단개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돈과 지위 따위에 초연하고, 거대 사찰인 봉은사 주지가 되어서도 대전 마당을 직접 빗질할 정도의 소박함을 간직한 이가 바로 명진 스님이다.

이만큼만 해도 그 쿨함에 인간적인 매력이 동할 수 밖에 없을 터... 그러나 관세음딴지 섹션을 아직 갖추지 못한 본지의 입장에서 이런 불교계 내에서 행보만으로 그를 이 시대의 어른으로 추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오히려 불교계 바깥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그가 세인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기 시작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상황에서였다. 천일기도 기간 중임에도 결국 산문을 나와 고인의 영결식에 참여, 불교계 의식을 치른 것. 이것은 사실상 기도의 맹약을 깨는 것으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교계 안팎의 비난이 나올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권양숙 여사의 청을 듣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재차 부탁을 받고는 잠을 이루기 힘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어찌 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고 본다.

우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승적 깨달음의 간지 아니냐. 기도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용맹정진도 소중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 중생을 위한 행위일 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언제든 깨 버릴 수도 있다는 뜻. 그 뜻이 오롯이 서 있지 않다면 어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으며 또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영결식장에서의 축원문 조차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뚜렷이 밝히는 명문장으로, 과거 보수 불교 시대의 어정쩡한 회피형 선문답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아래는 그 전문이다. 길지 않은 글이라 그대로 개재한다.

제16대 대통령 광주후인 노무현 영가시여!
노무현 영가시여! 노무현 영가시여!

이제 당신의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흩어져 돌아갑니다.
흙으로, 물로, 불기운으로, 바람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 육신을 움직이던 주인공, 영혼은
어느 곳에, 무엇으로 계십니까?

일락서산 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입니다.
해가 서산에 지니 달은 동녘에 뜹니다.
지는 해와 같이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노무현 영가시여!
당신은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미안해하지 않겠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불가(佛家)의 소신공양(燒身供養)처럼
온몸을 던져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뜻만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고 나아갔던 당당함,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해
몸을 던졌던 대원력 보살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사는 평등세상의 꿈,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던
발걸음...
그 어느 것 하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검은 구름 흩어지면
밝은 달 비추듯이
당신의 참뜻은 천강에 달이 비추듯 우리 가슴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떠나시는 길,
이천만 불자의 정성을 모아서 반야심경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본지 외에 어떤 사람이 서슬 퍼런 이 시대에 감히 이런 말을 권력과 국민 앞에 내뱉을 수 있더냐. 꽃 나비 춤추는 극락에서 행복하소서 운운하는 가소로운 웅얼거림을 예상했던 이들에게 명진의 이런 일갈은 한줄기 단비와도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터.

그의 이런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봉은사 앞에는 이후 아래와 같은 현수막이 걸렸다.


그렇다. 위의 축원문과 마찬가지로 그는 단지 고인의 죽음을 수많은 망자 중 하나를 대하는 승려로서 애석해만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중수부 검사들의 봉은사 출입을 거절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정권의 시녀에 대해 일종의 파문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점잖은 사찰에서 내건 이 플래카드의 그 문장 끝에는 (잘 보면)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이는 불순한 세상에 내뱉는 명진 스님의 뜨거운 사자후인 것이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음, 이 스님이 상당히 정치적이군 하고 넘어갔던 분덜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불교 홀대 정책으로 불교계가 열이 많이 받았구나 했던 분들도 꽤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행보는 절대 그게 다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주지라지만 보수 신도들이 많은 봉은사에서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기도 중인 스님이 왜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정부의 불교 차별에 대해 20만명의 불자가 서울광장에 모여 항의 집회를 했다. 자기들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의 약자들이 당한 일에 대해선 정치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또 왜 진보 편만 드느냐는 지적에 대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느냐에 있다.

또 며칠 전 기도가 끝나기 직전, 사실상 감옥살이나 다름 없는 천일기도 중의 심정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광우병 촛불 집회에 대해) 촛불과 재협상을 통해 건강 주권을 찾자는 외침이었다. (중략) 광화문 나가고 싶었다.

기도 중에도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의금을 조금씩 보냈다. 과일 떡도 자주 보내서 위로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어 용산참사 현장에 가야겠다.

용선참사 수사기록 1만여쪽 가운데 3천쪽을 감추는 것은 앞으로 이 정권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올바른 검찰상이 요구된다. 천성관 내정자를 봐라(중략). 1분 뒤에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다(중략).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 혐의를 천성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MB는 피 묻은 손으로 화해의 손을 내밀면 안 된다. 허언필망(虛言必亡 : 거짓된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이다.

씨파...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큰 어른에게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씀이 아닌가.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스님의 이런 마음은 언론을 통한 말로만 표현된 것이 아니다. 천일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는 실제로 지난 30일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았다.

이어 순천향병원의 빈소와 한강로의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그는 대 봉은사 23대 주지로서의 체면도 잊은 채 슬픔의 뚝뚝 눈물을 줄줄 흘렸다. 천일기도의 결과 어떤 희로애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얻었을 법도 한데,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불교가 그런 것이었던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맘만 편하면 그만인 의미에서의 부동심을 얻는 게 부처가 되는 거라면, 차라리 영겁의 세월 후 개과천선의 여지라도 남아 있을 나찰이 되는 게 낫다.

또 이 자리에서 그는 "천일기도 끝에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설파해야 하는데 용산에 와보니 도저히 그게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죄가 많은 것 같다" 고 분개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권,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 이라며 오만한 정권에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천일기도 기간 동안 시주금 등을 모아 스스로 만든 물경 1억 원을 유가족에 위로금으로 전달하고 불자의 몸으로 고 이상림씨의 부인을 한동안 말없이 안아주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의 이런 용기 있고 진정 어린 행보 앞에서 사특한 무리들의 잡소리나 시시한 형식과 체면 따위는 이미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세상에 나온 스님은 9월 3일 강원도의 선방으로 가서 다시 두 달간 참선할 계획이란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으로 빠진 천일기도 중 하루를 보충하는 결제를 하기 위해서다. 단 하루를, 빠질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었던 것을, 그것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산간 오지에서의 60일의 참선으로 갚겠다는 대찰 주지 명진의 이런 모습은 그가 어떤 맘가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60일은커녕 60년, 600년간 치러야 할 엄청난 죄과를 단 하루로 무마하려고 하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그의 이런 모든 깨달음과 용기는 부처 본인이 그러했듯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자살했고 3개월 후 재혼한 아버지도 20대 때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혈육 동생도 군대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진짜 슬퍼봤소? (중략) 밥을 먹다가도 울고, 잠을 자다가도 울컥 울음이 쏟아져 이불을 적시는 것이오."

그 슬픔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피하기 보다는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승려의 길을 택했을 명진. 그러나 그는 이미 30년 전 화계사에서 춘성 선사가 열반했을 때 춘성의 애창곡 나그네 설움을 선창한 후 상가를 노래자랑과 춤판으로 만들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이후 한 보살(여신도)이 그의 호방하고도 깊은 모습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며 매달리자, 죽은 동생 묘지에 데려가 동생을 살려내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조용히 말한다. 이로써 남녀의 사랑보다 훨씬 깊은 삶과 죽음의 화두를 얻은 여신도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간 일은 전설적인 일화로 남아 있다.

그가 진짜인 것은 아래와 같은 그의 말에도 담겨 있다.

"부대사(497-569)는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밤마다 망상으로 잠이 들고, 아침마다 망상과 함께 일어난다오"

소위 깨달은 척, 진리를 아는 척 떠들어대는 일부 승려나 목사 등과 비교했을 때 이 얼마나 솔직하고 털털한 말씀이냐. 이런 양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은 어쩌면 노무현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열라 파격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과거의 행적만큼이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됨은 말할 것도 없다.

짧은 이 지면에 스님의 일대기나 행적을 몽땅 다 쓸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정도 하자. 대신 명진 스님의 주옥 같은 말씀을 아래에 일부 소개했으니 열분들 스스로 그 통쾌무비함은 물론, 때로 본지에 버금가는 엽기적 언변을 즐기시길 바란다.

●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 현수막에 대해) 남의 통화까지 엿듣고, 메일까지 공개해 남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드는 그들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것이 없겠지만, 권력의 주구가 되어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그들도 남에게 당하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고 그랬습니다.

● 힘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고소고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다 피해가게 하는 것. 그게 정상적인 법치인가요? 저는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야 존경받고 무섭고 그런 거지,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입니까. 깡패세계와 같은 것 아니에요?

● 단풍놀이, 물놀이 가자는 말이 있습니다. 기차놀이 한다고 해서 애들이 허리띠에 새끼줄을 매서 칙칙폭폭 다니는 놀이가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에 가서 뻥튀기도 하나 들고 어묵 들고 다니는 것이 서민놀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민놀이.

● 시아버지는 시위하는 망루에 올라가 있다가 불에 타죽고 자기 남편은 과격시위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것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문제는 국가가 해결 안 합니까? 서민정치를 한다면 용산 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을 달래고 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야 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끄럼 모르는 배부른 돼지들이 활개칩니다.

● 그 동안 불교가 권력 앞에 비루했습니다. 잘못된 것은 지적해서 고쳐야 합니다. 봉은사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가사 벗고 산문 떠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 한국불교 문제점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불교는 선종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선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제사종, 기도종, 관광종, 입장료종입니다.

● (천일기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천일기도는 쇼입니다. 쇼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좋은 모습 보이면 따라올 것입니다. 불교미래 밝히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명진 스님과 일면식은 물론 어떠한 간접적인 관계조차 없으며, 심지어 불교도도 아니다. 그저 아직 이 땅에 우리가 뫼시고 사표로 삼아야 할 어른, 행동하는 양심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실감나게 알려 드리고 희망을 드리고 싶다.

비록 바보와 인동초는 떠났어도, 멋진 인물들이 다 죽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그들의 삶을 알고 배워, 부족한 우리도 나중엔 이렇게 멋진 사람이 함 되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래는 덤이다. 천일 기도를 마친 명진 스님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인데, 이 글에서 소개한 스님의 주요 행적이나 정권에 대한 죽비같은 꾸짖음의 말씀 등 핵심은 몽땅 빠뜨린 채 신변잡기성 중얼거림과 봉은사 신도 및 예산 확장 관련 잡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냥 오랜만에, 얘들 이런 애들이라는 거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7/2009082702089.html

Posted by 네오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