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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와는 달리 둘째는 7월 7일로 미리 날은 받아놓고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서진이는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나도록 진통을 기다리다 결국은 아침부터 하루종일 등산과 계단오르내리기를 한 끝에 밤 12시에야 진통이 시작되었었다.
7월 7일은 예정일인 18일보다 무려 11이나 당겨진 날이었지만, 38주부터는 언제든 출산할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출산을 하기로 맘먹었다.
물론 7월 7일로 날짜를 정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날이 길일이라고 장모님을 날을 받아오셨기 때문이다.

아침 8시 전에 병원에 와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전날 밤에 미리 짐을 싸놓고 7일 아침에는 일어나서 대충 밥을 먹고 출발해서 왔다.
서진이가 깨어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인사를 했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서진이는 깨어 있었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아마 "안녕히 가세요"라고 했던가...

의외로 차가 막혔지만 어렵지 않게 병원에 도착했다.
곧바로 분만실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는 동안 역시나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오늘 하루 이 대기실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 것일까.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산모와 남편이 왔다.
그 쪽도 남편만 대기실에 남은 덕분에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벌써 세번째 출산이란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모는 주영이보다 열 살이나 어렸다.
나에게 첫애냐고 물어봐서 "내가 좀 젊어보였나"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잠시 했다.
그 쪽은 두 딸에 이번엔 아들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아들을 낳기 위해 셋째를 가진 것인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둘째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로 주영이가 계속 힘들어 했기 때문에,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쨌거나 라이벌이 생겼다.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안으로 들어가니 주영이가 링겔을 꽂고 누워서 기계로 아이 맥박과 수축정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주영이랑 얘기를 하면서 링겔의 관을 보는데, 조그만 공기방울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간다. 분명히 혈관에 공기방울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주사바늘 근처에 있는 조그만 장치가 혹시 걸러주는 것일까 싶어 기다렸는데, 그냥 지나쳐 간다.
간호사를 불러 "이건 공기가 들어가도 상관없는 건가요?"하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급한데 그렇게 정중하게 말해야 했나 싶기도 하다.
간호사가 주사를 뽑고 공기를 뺀 후에 다시 연결했다. 뭐라 한마디 할까 하다가 중요한 날이고, 이 간호사가 주영이를 계속 돌봐야 할테니 그냥 참았다.

주영이가 누워 있는 동안 나는 가져온 간단한 짐을 병실에 갖다 두고 다시 왔다.
그래프는 별 신호가 없었고, 열심히 운동하라는 간호사의 말을 뒤로 하고 주영이와 병실로 갔다.
역시나, 전화기 선이 빠져 있었다. 
서진이 때 생각이 났다.
병실에 가서 기다리면 전화준다는 간호사 말을 듣고 병실에 가 있었는데, 그 때도 전화기 선이 빠져 있었다.
덕택에 전화를 했는데도 연락을 못받아 주영이에게 얼마나 원망을 받았던가...
링겔을 꽂은 채로 복도와 방안에서 걸어다니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30분 마다 돌아가서 진통정도를 봤는데,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아침에 라이벌 남편과 얘기하면서 "한 6시간 걸린다니 2시 쯤에 낳겠네요.", "점심 전에 낳으면 좋겠는데."라고 했던 것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산모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내려가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왔다.
라이벌도 아직 별다른 기색은 없다.
대기실에서 또다른 산모의 남편을 만났는데, 새벽 4시 반에 진통이 와서 병원에 왔단다.
1시 쯤에 대기실에서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건 곧 분만을 한다는 뜻인데...
아니나 다를까 곧 아이를 출산했다.
이 쪽은 첫애란다.
라이벌 남편과 계산해 보니, 우리는 4시나 되어야 출산할 것 같았다.
별수 없지. 기다리는 수밖에...

11시 쯤에 주영이가 무통분만에 필요한 약물투여를  하기 위해 먼저 주사바늘을 꽂았다. 약물은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그 때 투여한다고 한다.
주사바늘을 꽂는 작업도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져간 아이패드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바늘을 정확한 위치에 꽂지 못해 서너번씩 다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주영이도 슬슬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촉진제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통증이 오기 시작하고, 무통분만을 위한 주사바늘도 꽤나 아픈 모양이었다.
아픈 걸 참고 계속 운동을 하는데 별로 여의치가 않다.
중간에 30분씩 검진하러 가던 것도 이제는 한시간으로 간격이 늘어났다. 
조금씩 진통이 오는 것 같다가도 검진하면 별로 반응이 없고, 내진을 하고 나서 뭔가 진통이 시작되는 듯 싶다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3시쯤에 40% 정도 진행되었다고 하고 4시쯤에는  50~60% 정도가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진통은 별로 신통치가 않다.
더군다나 의사선생님이 무통분만용 바늘을 괜히 꽂았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그 와중에 라이벌은 진통을 시작하고 4시가 좀 지나자 출산을 했다.
이럴 수가... 우리가 먼저 왔는데...

5시가 되면 촉진제 투여를 그만 둬야 한다고 한다.
그럼 내일 다시 와야 하는 것인가?
인터넷에 이틀간 실패하고 결국 집에 돌아왔다는 글이 있더니,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인지, 그나마 조금 있던 진통은 아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주영이는 어차피 유도분만을 실패하면 수술을 해야 하니 그냥 오늘 수술하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다시 아이패드로 제왕절개에 관련한 이런저런 글들을 검색했다.
제왕절개는 당연히 자연분만보다 위험하고, 회복도 느리며, 회복시 통증 또한 더 크다... 라는 글들을 찾아 주영이에게 보여주었다.
계속 제왕절개를 고집하다 조금씩 다시 자연분만을 하는 쪽으로 주영이 마음도 기울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의사선생님과 상의하는게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5시에 다시 내진을 받으니, 의사선생님이 이제 많이 진행되었다며 어떻게든 오늘 끝내자고 한다.
주영이가 제왕절개에 대해 물어보니, 이렇게까지 진행된 걸 수술하면 너무 아깝지 않겠냐고 그냥 자연분만을 하자고 했단다. 주영이도 이젠 제왕절개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주영이와 함께 너무 일찍 온게 아닐까... 어차피 오늘이 지나서 낳을 거라면 날 받아서 온게 무슨 소용인가 등등을 얘기를 하다가, 어차피 병실에서 오늘을 보내려면 내가 덮을 이불이 필요할 것 같아 집에 다녀왔다.
돌아와 보니 병실에 주영이가 없다.
분만실에 가서 서성이니 들어오란다.
주영이가 분만실 옆 병실에 누워서 검사를 받고 있다.
내가 나간 후에 계단오르내리기 신공을 펼쳤더니 진통이 왔단다.
그것참...

아무튼 이제 더 이상 운동은 하지 않고, 다시 진통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롯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추가세일을 한다고 한다.
주영이가 눈여겨 보던 핸드백을 롯데에서 파는데, 오늘 사면 추가할인을 받을 수 있다나...
핸드백을 사고 싶다고 해서 용돈 50만원을 부쳐주었는데, 이 돈으로 오늘 사야겠단다.
덕분에 진통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노트북을 가져와서 핸드백 쇼핑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전개되었다.
주영이가 진통을 겪고 있는 동안, 나는 앞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무선랜을 잡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롯데쇼핑몰로 들어가 주영이와 핸드백을 골랐다.
결제를 해야 하는데, 이놈의 쇼핑몰! activeX 프로그램을 한 15번에 걸쳐 설치한다.
카드 결제 한번 하려고 클릭직을 수십번 하고 있으니,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간호사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나.
아내는 진통 중인데 그 앞에서 노트북으로 쇼핑이나 하고 자빠져 있으니...
우여 곡절 끝에 핸드백 쇼핑을 마쳤다.

잠시 후 진짜 진통이 시작되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왜 이렇게 진통이 안오는지 모르겠다고, 별로 아프지가 않다고 하던 주영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나가서 대기를 하고, 주영이는 잠시 후 분만실로 옮겨졌다.
고통이 심했는지 주영이가 울며 사정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서진이 때와는 달리 일단 진통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빨리 진행되었다.
가운을 입고 잠시 기다리자 분만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긴장이 점차 최고조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그동안 속으로 수십번이나 했던 기도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제발 아기와 산모가 무사하기를...

주영이가 두번째로 힘을 주기 시작하자 출산이 시작되었다.
머리 쪽에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의사선생님의 동작으로 아기가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아기가 나왔다.
간호사가 클립으로 탯줄 양쪽을 고정하고 나에게 가위를 주었다.
탯줄을 자르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는 말에 긴장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쉽게 잘렸다.
빨간 아기와는 달리 흰색에 투명하기까지 한 탯줄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아기와 가까운 쪽의 탯줄을 한번 더 자르고 나서, 아기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진이 때 신생아가 얼마나 작은지 이미 한번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기는 모든 부분이 완벽했다. 눈, 코, 입,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
서진이는 혈관종이 있었는데, 이마도 깨끗했다.
주영이도 안정되어 아기를 보고 싶어했다.
안경이 없어 자세히 볼 수 없었던 터라 자꾸 나에게 예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예쁘지.
서진이보다 예쁘냐고 물어본다.
더 예쁜 것 같다고 했다.
내눈에는 서진이와 똑같아 보인다.
눈, 코, 입이 다 똑같다.
감동적이다. 서진이 때 느꼈던 그런 벅찬 감동이 다시 밀려왔다.
주영이가 너무나 대견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텐데 다 이겨내고 이렇게 예쁜 새생명을 만들어 내다니...
남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기를 닦아내고 나와서 캠코더로 찍었다.
몸무게는 2.7 kg. 서진이보다 150그램이 더 무겁다.
서진이에 비해 18일이나 먼저 나왔는데, 몸무게는 더 나간다.
머리는 더 작아보인다. 미안해 서진아...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린 것에 비해, 그 이후는 너무나 빨리 그리고 순조롭게 지나갔다.
병실로 가기 전에 주영이는 분만실 옆 병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는 부모님과 장인장모님, 동균이와 근혜에게 연락을 했다.
페이스북에도 올려서 많은 축하를 받았다.

사랑하는 주영이와 우리 딸들.
지금 이순간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한가지 뿐이다.
특히 우리 서현이.
목도 못 가누는 서현이가 빨리 자라주기를... 그리고 서진이 만큼만 건강하기를...
Posted by 네오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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