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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

영화 2010. 5. 16. 23:34

연쇄살인법을 잡는 연쇄살인범. 덱스터를 보기 한참 전 TV의 덱스터 광고에서 들었던 말로 기억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던 카피다. 그당시 내가 상상했던 내용은, 연쇄살인범이 있다 -> 경찰에 잡힌다 -> 경찰에서 보조원으로 일한다 - 연쇄살인범을 잡는 전담요원이 된다, 이런 식이었다. 그저 그런 경찰물이겠지...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CSI 시리즈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어디선가 내용이 매우 충실하다는 글을 읽게 되고 흥미가 생겨서 보게 되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매우 충격적이다. 살인을 저지르는 - 그것도 토막살인에 시체유기까지... - 덱스터의 모습은 하드고어적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자극적이기만 한 드라마를 왜 보기 시작했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매 회마다 한 명씩 연쇄살인마를 죽이는 덱스터, 자신을 길러준 - 지금은 죽고 없는 - 양아버지의 코드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살인을 하는 덱스터. 아이러니하게도 덱스터는 경찰에서 살해현장분석을 하는 법의학자(forensic)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살해현장을 더욱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장치이다. 게다가 경찰 안에 있으면서 자신에게 조여 오는 수사망을 직접 보는 장면들이 드라마 내내 묘사된다는 점에서 극적인 요소도 크다.

처음엔 단순반복되는 살인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으나, 덱스터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고 존재여부조차 알지 못했던 형이 덱스터를 능가하는 새로운 연쇄살인마로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긴장감은 극한으로 치닫게 된다. 덱스터의 이중생활에서 밝은 쪽의 축을 담당하는 리타의 존재와 캐릭터 역시 드라마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리타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점차 커진다.

최근의 다른 미드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복잡하게 얽힌 이들간의 관계가 메인스토리가 되는 이 드라마는, 결국 가족에 대한 드라마이다. 드라마 초반 덱스터는 자신을, 보통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리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가족에의 애착이 커지고, 결국은 그러한 감정들이 냉정하기만 하던 덱스터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처음에는 단지 위장을 위한 도구로서만 생각하던 가족이었지만, 점차 덱스터는 진정한 가족애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고, 살인본능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시즌 4에서 이러한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르게 되고, 그 결과 덱스터는 가족의 소중함, 그 중에서도 리타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시즌 4의 결말은 이러한 덱스터와 덱스터에 동일시되어버린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 준다. 그것은 바로 리타의 죽음.

이 결론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어서 - 하얀 거탑에서 주인공이 췌장암에 걸려 죽게 되는 것 만큼이나 -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날 밤에 서진이를 껴안고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였다. 드라마 덱스터의 놀라운 점은, 덱스터가 무자비한 연쇄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자신을 덱스터에 동일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덱스터가 보편적인 시민 집단에 위협을 주는 연쇄살인자들을 대상으로만 살인을 하고, 어둠의 반대편에 있는 밝은 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는 덱스터가 경찰에 검거되기 보다는 수사망을 빠져나가기를 더욱 갈망하고, 그의 살인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심지어는 그가 무고한 - 살인이라는 측면에서 - 사람을 죽였을때조차 면죄부를 주고 싶어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덱스터가 무기력한 현대인 - 자기 가족에 위협이 되는 인간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 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덱스터는 살인자란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무결에 가까운 인간이다. 진심으로 가족을 아끼고, 대부분의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주며, 완벽하게 비밀을 지켜주고,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는 진정한 프로라 할 만큼 전문성을 갖고 있다.

덱스터의 다음 시즌은 색다른 기대감을 던져 준다. 이제 덱스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끈이 끊어져버렸다. 글자 그대로 고삐가 풀려버린 살인마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이와 같은 불행을 가져온 살인행위를 완전히 버릴 것인가, 아니면 다시 아이들과 살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인가. 당연히 마지막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리타를 잃어버린 덱스터는 너무나 가여워서 오히려 드라마로의 집중을 방해할 것만 같다. 불쌍한 덱스터, 이제 어떻게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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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네오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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