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서진이
내가 별로 숫기도 없고, 남들 앞에서 별로 의견을 내지 않는 타입이라 그런지,
서진이나 서현이가 자기 주장이 강하면 오히려 대견하다.
서진이는 아빠가 하는 말 따위 아주 쉽게 한 귀로 흘려들을 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화도 내지만 또 좋은 성격이란 생각도 든다.
내가 야단칠 때마다 그것 때문에 끙끙대는 소심한 성격이라면 영락없이 내 판박이라고 생각했을텐데,
서진이는 내가 야단치던 말던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한다.
그러고보면 서진이는 내가 화내고 야단치는 것은 잘 기억안하고 내가 잘해주는 것만 기억하는 듯 하다.
참 고마운 아이다.
어제는 놀이학교에서 앞에 나와서 시범보일 사람 손 드라고 했는데,
수많은 아이들 중에 서진이 혼자 손 들었다고 한다.
내 성격과는 정반대이다.
하긴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손도 잘 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때인가 하기 싫어졌다.
국어시간에 문단 단위로 주제어를 정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처음엔 내가 주장한대로 되다가 나중에는 선생님이 전과를 보고 일러주는 것으로 결정되고 난 뒤엔 하기 싫어졌던 것 같다.
이미 전과에 답이 있는데 발표해서 뭐하나 싶었었다.
서진이는 그런 일이 없이 앞으로도 계속 잘 나서는 애가 되면 좋을텐데...
오늘 아침에는 서진이가 일찍부터 깨서 나를 귀찮게 했다.
팔베개를 해달라는둥,
바지를 똑바로 해달라는 둥,
안아달라는 둥,
왜 그렇게 일찍 깼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7시 반쯤 되서 서현이 소리가 밖에서 들리자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보통 때 같으면 서현이가 밖에서 애타게 아빠를 찾아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을텐데.
왠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둘이서 TV 코앞에서 열심히 TV를 보고 있다.
역시... 엄마아빠가 아직 자는 동안 TV를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나름 서현이를 잘 돌본다.
내가 뒤에서 보라고 소리쳤더니 서진이만 뒤로 갔다가 서현이도 데리고 뒤로 갔다.